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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싶다 909회, 억울한 무기수 이한탁씨 사연

벙커쟁이 2013. 9. 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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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사건을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한 국민의 억울함을 풀어 주는 것을 넘어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



방송 일자 : 2013년 9월 7일 (토일) 밤 11시15분~

연 출 : 황성준, 글구성 : 박진아

진 행 : 김상중



■ 이한탁씨 사건의 전모


 
[오른쪽 두번째 이한탁씨]

1987년 7월 28일 뉴욕 퀸즈의 엘름허스트에 거주하고 있었던 당시 55세의 미국 영주권자였던 이한탁씨는 당시 우울증에 시달리는 20세의 대학생 큰 딸 지연이를 기도로 치유해 보려고 펜실베니아주의 포코노 기도원에 갔다가 딸을 잃게 되는 화재 사고를 당하고 맙니다.

1989년 7월 29일 새벽 3시 전기 누전으로 인한 화재 사고로 인해 결국 딸은 불에 타 사망을 하고 자신은 살아 남게 되었는데요.

당시 화재가 발생한 곳은 교회의 수양 관으로 이용되던 한 오두막으로 그곳에는 재미교포 이한탁 씨와 그의 딸인 지연 양이 머무르던 중이었습니다.

이상한 냄새에 잠이 깬 이씨는 곧장 밖으로 뛰어 나갔고 불은 삽시간에 오두막 전체로 번져나갔다고 합니다. 화재발생 후 약 30분이 지나서야 불은 진압되었지만 이날 지연 양은 안타깝게도 피하지 못한 채 결국 사망을 하게 됩니다.


이 사고로 이씨는 딸을 죽인 아버지라는 오명을 쓴채 펜실베니아주 정부가 관리하는 락뷰교도소에서 중범죄자로 분류되어 현재까지 무려 24년간을 죄수번호 BN 9599로 복역중이라고 합니다.

현재 그의 나이는 80세를 바라보게 된 상태…


3천명이 넘는 재소자가 거의가 중범죄자로 구분되어 있는 이 곳에 단 한 명의 아시아인, 그 것도 한국국적을 가진 복역수는 이한탁 씨가 유일하다고 하는군요.


이 사건은 그 동안 수많은 국내외 언론들에 의해서 보도되어져 왔었고  1989년에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특집 방영 되기도 하였으나 긴 세월로 인해서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점점 사라져 가는 와중에 오늘 다시 SBS를 통해서 다시 재 조명을 한다고 합니다.



■ 미국 검사측의 주장은 어떠 했나?


당시 사건을 맡았던 검사 데이빗 크리스틴의 주장


뚜렷한 목적도 이유도 없는 존속 살인에 대한 검사의 어의 없는 주장은 아래와 같다고 합니다.

"정말 어의 없는 대목, 그가 왜 딸을 죽여야 했는지에 대하여서는 굳이 검찰이 그것 까지 밝혀야 될 이유는 없다?"

그것도 존속살인 사건인데 말입니다.

이 부분만 봐도 정말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어의 없다는 것을 말로 표현할 길이 없네요.



비 전문가인 내가 봐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질 않는다!


[기름 한드럼이 통상 200리터, 검찰이 주장했던 방화에 사용된 가솔린양은 242리터 개인 혼자서 이게 말이 되는가?]


64갤론은 우리가 쉽게 알수 있는 리터단위로 환산을 한다면 약 242리터 입니다.

1리터당 1kg으로 환산을 한다고 하더라도 무려 242kg에 해당되는 휘발유를 개인이 퍼붓고 불을 질렀다고 하는 것은 도저히 상식적으로도 납득이 되질 않는 부분입니다.


이정도 양이면 유조차가 와서 퍼부어야 할 기름 한드럼통 보다도 더 많은 양이기 때문 입니다.

아울러 그 정도의 양의 가솔린을 구입했다고 하면 상식적으로 구입처 등의 조사만 해 보더라도 금방 그 결과를 알 수 있었을 텐데 이런 말도 안되는 주장만으로 사건을 종결시켰다고 하는 것은 동네개가 지나가다가 웃을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1급 살인죄를 적용하여 법정 최고형인 종신형을 구형한 검사의 기소장에는 미국의 양심세력과 화재 전문분석가들의 자료가 빠져 있었고 또한 딸을 죽인 비정한 아버지가 왜 그래야 하는 이유를 검찰이 밝힐 이유가 없다고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이 사건에 대한 조사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 전문가들의 의견은 어떠 했나?


뉴욕경찰 출신 화재감식 전문가 헤럴드 듀간


64갤론(Gallon) 즉 242리터의 가솔린을 여러 군데 뿌렸다면 바닥 전체가 완전히 타 없어져야한다.

바닥이 고르고 희미하게 탔다는 것은 천정에서 전기누전으로 점화된 증거이다.

맥주 한 캔 만큼의 휘발유에도 바닥이 완전히 연소되는데 현장에서는 카페트 일부조차 타지 안았다고 한다.

또한 침대 받침대 페인트가 거의 타지 안았다.

아울러 말도 안되는 것은 검찰측이 주장한 방화 지점인 침대 다리 아래 카페트에는 녹이 그대로 남아있다.


앞서 언급을 했었지만 242리터의 가솔린을 뿌리고 과연 이씨가 이곳에서 탈출이나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죠.

탈출은 커녕 본인조차도 화염에 휩싸여 탈출이라고 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 하지 않았을 가 합니다.

지난 2011년 단지 기름 한통정도로도 집전체를 처참하게 전소를 시켰던 의문의 여수모녀방화사건이 생각나네요.



존 제이 형법대학교 교수인 피터 디프로스트 화재감식 전문가


현장조사와 검찰측 보고서의 조사결과에 대한 결정적인 실수들을 발견하여 그 사실을 변호사에게 알렸다.

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자료를 의도적으로 기피하는 여러 번의 상황에 분개 하였다.

처음에는 전문가 의견을 의뢰 하였다가 재판이 연기되었다고 슬쩍 피하더니 나중에는 아예 필요 없게 되었다는 서한을 보내놓고 정작 재판정에는 혼자 나가서 졸속재판의 들러리가 된 것 같았다.

검찰이 주장는 문제의 C7-22 와 같은 촉진제가 9군데 뿌려졌다는 것은 현대 과학을 무시한 것이다.

그 것은 천정의 타르가 열기에 의해 녹아 떨어진 것이며 바로 이 타르가 촉진제 캐로신과 같은 C7-22까지의 성분을 가지고 있다.

모든 근거와 상황을 종합해 보면 화재는 천정에서 시작된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전기누전을 전혀 언급 안한 상식에 어긋나는 수사 그 자체가 사건왜곡을 전제로 하고있다.”



뉴욕주 웨체스터 카운티에서 근무중인 재미교포 노여수 법의관


이 재판 과정에서 펼쳐진 검찰주장은 완전 100% 틀린 것이다

지연양은 불이 난 그 시간 욕실 안에서 일상 습관적인 샤워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공간은 많은 물 때문에 열기가 상대적으로 적고 대신 물 때문에 산소량이 많았을 것이다.

이하탁씨가 욕실 문을 열려고 할 때는 잠겨져 있었다고 했다. 샤워를 하고 있었으니 습관적으로 잠구었을 것이다.

하지만 점차 뜨거워지는 열기 때문에 견딜 수 없어 욕실 문을 열었을 때는 바깥과 욕실내의  산소량의 차이, 즉 욕실 안에 더 많이 있는 산소 때문에 순식간에 바깥의 불길을 끌어 들이는 결과가 되었으며 그 것이 딸을 덮쳤고 순식간에 죽음을 맞이하여 그 때 알몸인 채로 쓰러졌던 것이다.

그 증거로 이한탁씨의 딸인 지연양의 피에서 8-11% 의 산화탄소가 검출된 것이다.

만약 검찰측 주장대로 아버지가 딸을 살해 해서 화재 전에 사망 했다면 혈액에서 일산화 탄소는 전혀 나타나지 않아야 정상이다.



■ 엉성한 재판결과에 대한 또 다른 의혹


그 것은 바로 막대한 보험금 때문 이라는 이야기가 있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기도원인 헤브론 수양관을 책임운영하고 있는 뉴욕 순복음 교회가 가입되어 있는 제반 책임보험 액수는 무려 3백만불이며, 사고 발생원인이 단순 화재일 경우 교회의 이름으로 커버되는 수양관까지 포함되기 때문에 미국보험회사는 인명피해 손상까지 책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 보험회사로부터의 로비의혹은 있지 않나 하는 추즉까지도 돌았다고 하더군요.



■ 아쉬움과 한숨이 나오는 당시 상황들...



뉴욕 순복음 교회가 조금만 더 일찍 적극적이였다면 하는 아쉬움


이한탁씨가 피의자 신분으로 체포구금 당한지 몇 달 만에 보석금 5만불이 책정되었다고 합니다.

24년전이니 이 금액은 정말 엄청나게 큰 돈이긴 했었죠.

이런 이유 때문인지 1989년 10월 어느 날, 뉴욕에 있는 순복음뉴욕교회 당회는 함께 기도하는 교인의 안타까운 호소를 뒤로 하고 보석금 5만불 지원에 대한 문제를 의결을 통해 정식 부결했다고 합니다.

당시 부결에 대한 뚜렷한 이유나 설명은 없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10년이 지난, 1999년 순복음 뉴욕교회는 그 때 부결되었던 보석금 그 액수와 똑 같은 5만불을 기부하고 이한탁구명운동에 동참하였다고 합니다. 

만약 처음부터 이렇게 했더라면 좀더 일찍 억울한 사람의 누명을 벗길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뉴욕 한인회의 영략력 있는 사람들의 태도


뉴욕한인사회에서 일어난 이 일이기에 이한탁구명운동을 선거공약으로까지 내걸고 적극적으로 나섰던 한인회장과 인권위원회 위원장은 모두가 어느 순간 이 사건을 외면하고 말았다는데요.

1993년 3월10일 재심청문회가 열리던 그 날, 수 많은 동포들이 생업을 뒤로 하고 먼 길을 찾아서 달려 갔지만 정작 뉴욕한인회 영향력이 있는 인물들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안았다고 합니다.



당시 어의 없었던 대한민국 정부의 방관


재미동포들의 간곡한 탄원서가 보내어졌으나 김영삼 정부당시  1994년 1월11일자 정부합동 민원실장 이름으로 회신이 되어 온 문서는 이런 답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 한승주 외무부 장관 이름으로 날라 온 채 50자도 통보서

이건 뭐 한국민의 억울한 사안이 문자메시지 한통 수준으로 종결되었네요.

아니 타국에서 국민이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본국 정부가 관여해야 할 사안이 아니라니?

과연 이나라 국민은 어느 정부로 부터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말인가?



국민의 탄원 받아 드린 김대중 정부, 그러나 조금만더 노력을 했더라면


1999년 7월 23일자로 김대중 대통령이 보냈던 서한


그러나 대한민국 대통령의 친서를 5개월만에 답변서한을 보내는 미국 주지사 한나라 대통령의 친서를 고작 주지사 따위가 5개월만에 아주 짧은 답변을 보내는 태도라니...

이런거 보면 나라의 힘을 더 길러야 한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 않을 수가 없네요.


우리나라에서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무죄판결을 받는 미국인이 있는 반면 이렇게 억울한 사연을 가지고도 변변한 국가의 도움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우리 국민 한사람의 억울한 사연...


현재 이 사건에 대한 이한탁 구명위원회는 재미교포 중심으로 조직되어 2000년 5월12일 선임변호사와 계약을 하고 지금까지 그의 구명을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방영되는 SBS 시사교양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 909회에서는 우리 국민의 관심이 한번 더 모아지기를 바래 봅니다.

아울러 무려 24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한번 국민들의 관심에 힘입어 억울할 사연을 가진 우리 동포가 말도 제대로 안 통하는 타국 땅에서 이토록 억울한 사연을 겪지 않기를 바래 보면서 온 국민과 더불어 대한민국 정부가 다시 한번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기원해 봅니다.


아울러 저 역시도 서명이나 모금 운동이 있다고 한다면 적극적으로 동참을 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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