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에서 발생을 했었던 천안문사태 25주년이 지난 6월 4일이였다고 하네요.
이날을 흔히들 피의 일요일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중국에서는 천안문사태 25주년을 맞아서 이를 감추기 위해서 구글 검색을 차단하는 등 인터넷 규제를 통해서 다양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 글들을 읽어 보니 현재 중국의 대학생들은 천안문사태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그 일을 쉬쉬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군요.
당시 제 기억으로도 이 사건은 외신을 통해서 크게 보도가 되었던 것으로 생각이 나긴 합니다.
외신에 의하면 추정되는 사망자 수가 최대 1만명 까지였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정확한 사망자 수 조차도 현재까지 파악이 되지 않을 정도로 사실을 감추고 있고 사망자 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부상자를 만들어낸 유혈 사태였었죠.
■ 천안문 사태 25주년 발생의 원인은? 민주화 운동이라 지칭하기엔 다소 애매한 이유 |
현재 중국 내부는 쉬쉬 하고 있지만 천안문 사태 25주년을 맞이해서 홍콩에서는 이미 사상최대의 촛불집회까지 열리며 외국에서는 천안문 사태를 재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혹자는 천안문 사태을 우리나라 5.18민주화 항쟁과 비교를 하기도 하는데요.
사실 그런 비교는 말도 안되는 소리구요.
그와는 좀 차원이 다른 평가를 내려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5.18 민주화운동의 경우는 신군부세력에 맞서서 민주화를 위한 항쟁이였다고 하면 제가 본 천안문 사태는 민주화 항쟁에 대한 부분도 물론 있긴 하지만 그 보다는 민중봉기에 가까웠다고 하는 생각이 들긴 했었습니다.
당시 등소평 시절 당시 중국은 10년간 개방과 개혁을 진행하면서 공산당 간부들의 부정부폐가 심화되어 나갔고 개방제로 인한 급격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급격한 물가상승은 서민들을 점점더 궁핍하게 만들어 나가고 있었으며 또한 공산주의 체제와는 다른 시장경제체제의 도입은 급격한 실업율 증가를 가져 왔었던 것이죠.
반면 5.18민주화 운동의 경우는 광주시민들이 실업율이 높아서 그리고 물가가 너무 많이 올라서 못살겠다고 거리로 뛰쳐나왔던 것이 아닌만큼 그 근본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당시 중국은 공산주의 체제에서 개방형 시장경제 체제로의 급격한 변화를 겪던 격동의 시기였기에 이에 적응을 하지 못한 중국 국민들은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었고 중국국민들이 따르던 지도자였던 후야오방의 죽음을 계기로 그를 추모하는 행사를 진행하던 것이 촉진제가 되어서 이에 불안을 느낀 중국공산당이 결국 1989년 계엄군을 동원해서 민중들을 무참히 학살을 시켰던 것이 천안문 사태라고 볼 수가 있을 듯 합니다.
당시 안타까운 생명히 무참히도 목숨을 잃었었고 상당수의 많은 중국 국민들이 해외로 망명을 하였으며 당사 천안문 사태와 연관이 된 사람들은 현재까지도 가택연금을 당하거나 감시를 받는 등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는 듯 합니다.
천안문 사태 25주년을 맞이하긴 하였으나 전체적인 내용을 놓고만 보자면 이를 민주화 운동으로 평가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는 듯 합니다. 다만 무장하지 않은 시민들을 무참히 학살하여 반 인도적인 행위를 저지를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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