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경제

대종상 작곡가 절도범이 된 사연 음악계의 빈익빈 부익부 현실 안타까워

벙커쟁이 2014. 10. 3.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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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9월 19일 오전 10시30분쯤 부산 부산진구의 한 명품시계 판매점에서 손님으로 가장해 시계를 보여달라고 한 뒤 같이 간 아들로 하여금 6300만원 상당의 시계 3점을 훔쳐 달아나게 한 혐의를 받았던 66세의 한 남성이 경찰에 체포되어 결국 구속이 되었고 아들은 현재 경찰이 추적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검거가 된 그는 알고 보니 놀랍게도 1990년대 초반 대종상 작곡가로 이름이 알려진 천재작곡가 이모씨...

이토록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기에 사람들은 하필 왜 대종상 작곡가 타이틀을 가졌던 사람이 그렇게 절도행각까지 벌일만큼 몰락했느냐 생각을 할 수도 있겠으나 사실 음악계의 현실은 빈인빈 부익부 현상이 심각해서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대종상 작곡가의 몰락 그는 왜 절도범이 되었을까? 



한때는 잘나가던 대종상 작곡가

한때 밴드 활동도 하면서 음반을 내기도하였고 총 175편의 영화음악을 작곡한 소위 잘나가던 작곡였다고 합니다.

이미 알고 있는 네티즌 분들도 있겠으나 1982년 부터 영화음악을 시작하여 1990년대 초에는 이덕화 이미연이 주연을 했던 영화로 대종상까지 받았으며 가장 최근인 2010년까지도 모 영화의 음악을 맡기도 했었던 말 그대로 잘나가던 음악가였다고 합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그가 정식으로 음악을 배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많은 영화음악을 작곡했었다고 하는데요.

정말 사람 인생은 한순간에 몰락을 할 수도 있는 모양 입니다.


대종상 작곡가의 몰락 경찰조사 당시 통일음악상 공모에 응모했다는데?

한때 대종상 작곡가로 알려지며 잘나가던 그는 두 차례 이혼했으며 현재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전락해 서울의 고시원을 전전하고 있다가 생활고 때문인지는 몰라도 결국 절도행각 까지 벌이는 상황까지 가고야 말았다고 하는데요.


경찰에 따르면 검거된 대종상 작곡가 출신 이씨는정부가 주최한 상금 3억원 상당의 통일음악상 공모에 응모했는데 장관에게 시계를 주려고 했다는 엉뚱한 말을 늘어놨다고 하는데요.

통일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지난 2010년 이후로는 통일부에서 주최하는 음악회가 열린것이 없는 것으로 보아 경찰에서 진술한 내용은 근거 없는 소리였던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잘나가는 대종상 작곡가? 하지만 생각 만큼은 그리 잘나가지 않았을 수도

우선 대종상 작곡가든 뭐든 간에 어찌 되었건 아무리 유명인사이고 가난할 지라도 남에 물건에 손을 데서 절도행각까지 벌였다고 하는 것은 응당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씀을 우선 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상상하는 것 만큼 대종상 작곡가 출신이라고 해도 그리 잘나가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 할 수는 없을 듯 합니다.


올해 4월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발표한 음악 저작권료 TOP5  따르자면 1위에 약 12억원으로 박진영이 뽑혔고 2위는 9억 7천만 원으로 조영수, 3위 9억 원으로 YG 프로듀서 테디, 4위 8억 원 유영진, 5위 7억 원으로 빅뱅 지드래곤이 차지한 것으로 조사가 된 바가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우리나라 음반업계가 저작권료 관련 체계가 제대로 잡히기 시작한 시점이 '소리바다' 라고 하는 무료mp3 다운로드 사태로 인한 소송이 붉어지기 시작한 시점부터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아무리 좋은 음악을 만든다 할 지라도 소위 말하는 길보트 차트에서 먼저 뿌려지던 시기였기에 별도의 저작권료는 상상도 할 수가 없는 시기였고 1990년대에는 음반 작곡가들의 작곡료가 곡당 수십만원에 불과 할 정도로 그리 작곡가들이 호사를 누리던 시기는 아니였을 겁니다.


물론 대종상을 받고 난 이후 부터는 작곡료가 대폭 인상은 되었겠죠.
하지만 그가 작곡을 주로 하던 시기는 2000년대 초반 까지였으니 돈관리를 잘 하지 못할 경우에는 오히려 안정된 월급쟁이만 못할 수도 있었을 듯 합니다. 아울러 그가 주로 맡았던 음악이 영화음악이다 보니 현재까지도 대중들이 즐겨 부르는 가요하고는 별 상관도 없을 듯하구요.
그러다가 두번의 이혼까지 하고나니 빈털털이가 될 수 밖에는 없었을 테구요.


여튼 동정의 여지는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한때의 잘나가던 대종상 작곡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도 말년에 절도 행각까지 벌였다는 것은 어찌되었건 간에 인생을 잘 못 산 것이니 만큼 죄값을 충분히 받고 뉘우쳤으면 하는 바램이며 이후에는 다시한번 천재적인 음악성을 살려서 재기에 꼭 성공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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