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알고 계시듯이 잉글랜드 국왕이자 가장 추악한 폭군으로 알려진 리처드3세는 셰익스피어 희극에 등장을 하여 조카를 죽이고 자신이 왕에 오르는 잉글랜드의 가장 사악했던 군주로 잘 알려져 있었죠.
하지만 2013년 02월 04일경 영국방송 BBC는 2012년 8월 영국의 레스터 시의회 주차장 지하 옛 교회 터에서 발굴됬던 유해가 최종적으로 리처드 3세의 유골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를 하면서 전세계를 떠들석하게 만들었었는데요.
이 일을 계기로 해서 리처드3세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인 연구가 다시 일고 있고 그의 명예 회복에 대한 움직임도 일고 있다고 합니다.
우선 리처드3세는 어떤 왕이였는지 아주 간략하게 나마 말씀을 드리고 그와 연관된 이야기도 몇 가지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리처드3세의 등극과 몰락 |
다른 나라 긴 역사를 다 이해를 하기에는 다소 어려울 수가 있으니 이해를 돕기 위해서 사전에 알고 있으면 좋을 몇가지를 우선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사실 잉글랜드 왕의 계보를 보면 에드워드, 헨리, 리처드 등 왔다갔다 하는터라 1세 부터 순서대로 이야기 하기기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간략히 리처드3세를 중심으로 해서 전.후로만 간단히 살펴 보는 것이구요.
리처드 3세는 요크왕가의 에드워드4세의 막내동생이자 요크왕가의 마지막 왕이 된 비운의 왕 입니다.
1. 요크 왕조의 시작
1455년부터 1485년까지 플랜태저넷 왕가에 뿌리를 두고 있는 리처드3세가 속한 요크셔왕가와 랭커스터 왕가는 당시 왕위계승을 두고 장미전쟁이라고 하는 전쟁을 치루고 있었던 중이였는데요.
당시 리처드3세의 형이였던 에드워드4세가 랭커스터 왕가였던 헨리6세를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에드워드4세(리처드3세의 형)
2. 리처드3세 시대의 개막과 조카를 죽인 삼촌
1483년 자신의 형인 에드워드4세가 사망을 하게 되자 어린 조카인 에드워드5세가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요.
그러나 그는 자신의 조카의 어머니였던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자신의 형인 에드워드4세의 결혼이 무효라고 주장을 하고 결국 조카를 런던탑에 가두어 죽게 만들어 왕위를 찬달을 하게 됩니다.
뭐 우리가 알고 있는 사악한 폭군의 이미지는 바로 이런 것이죠.
3. 리처드 3세의 전사와 요크셔왕가의 몰락
왕위를 찬탈한지 고작 2년이 조금 넘는 시점에서 리처드3세는 1485년 보즈워스 전투에서 헨리 튜더(헨리 7세)에게 패해 전사를 하게 되고 이로서 요크 왕가는 몰락을 하게 됩니다.
장미전쟁(요크왕가와 랭커스터 왕가간의 전쟁) : 출처(위키백과)
■ 튜더왕가의 시작과 리처드3세의 폭군이미지 극대화 |
1. 튜더왕가 헨리7세 시대의 개막
사실 헨리튜터는 랭커스터왕가 출신은 아니지만 그녀의 어머니인 마거릿 보퍼트는 에드워드 3세의 고손녀로 랭커스터 왕가에 속했기 때문에 랭커스터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인정받게 된 것이죠.
에드워드 4세의 딸 엘리자베스 요크와 정략적인 결혼을 하여 요크 왕가의 상속권까지 이어받게 됩니다.
암튼 이 시대는 권력 유지를 위해서 한 집안끼리 결혼을 하고 거참 희안하긴 합니다.
헨리7세(리처드3세를 장미전쟁에서 죽이고 튜더왕권 시대를 연 왕)
따지고 보면 요크왕가나 랭커스터 왕가나 둘다 플랜태저넷 왕가의 후손들이고 요크셔왕가의 시조가 된 랭글리의 에드먼드는 에드워드 3세의 4남이고 튜터왕가의 헨리튜더의 어머니는 역시 에드워드3세의 고손녀였기 때문이죠.
결국 어찌보면 권력을 위해서 같은 집안끼리 죽고 죽이는 무서운 역사가 벌어진 것이라 봐야 할 듯 하네요.
2. 리처드3세의 폭군이미지 극대화
리처드3세에 대한 사악한 왕의 이미지를 극대화 시킨데에는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와 튜터왕가의 마지막왕이였던 엘리자베스1세 여왕의 역할이 가장 컸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엘리자베스 1세
셰익스피어의 작품인 '리처드3세'라는 작품에서는 리처드3세를 영국역사상 가장 사악한 폭군으로 몰고 갔었기 때문이죠.
아울러 엘리자베스1세 때가 영국문과가 꽃을 피우는 국민문학의 황금기였으며 이때가 바로 영국의 르네상스 시대가 열린 때 이기도 했었습니다. 여왕입장에서는 아마도 튜터왕권의 정통성을 더욱더 공고히 하기위한 것으로 어쩌면 셰익스피어의 문학을 이용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는 리처드 3세를 기형이고 못생긴 사악한 왕으로 묘사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사실 저도 어릴적에는 북한군 하면 늑대같이 생겼고 김일성은 돼지 머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니 이것도 일종의 문학에 의한 세뇌였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애니메이션에서 조차 사악한 왕으로 묘사된 리처드3세 |
영화 '라이온킹'을 기억하시는지요?
1994년도에 개봉을 하여 월트디즈니 최고의 애니메이션으로 평가를 받고 있고 아카데미 음악상 까지 받았던 '라이온킹'의 스토리는 셰익스피어 원작인 '햄릿'에 배경을 두고 있다고 하지만 일각에서는 애니메이션 상에서 등장 하는 사악한 사자 스카가 '리처드3세'를 묘사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정글의 왕이였던 무사파의 아들 심바를 자신이 삼촌인 스카가 내쫓고 왕위에 올랐으나 결국 심바가 커서 다시 밀림의 왕이 되는 내용을 다루고 있었는데요.
여기에서 나왔던 사악한 사자 스카 역시도 영락없는 리처드3세 같은 느낌이 있었으니까요.
■ 조선의 리처드3세 세조 |
1417년 태어나 1455년 국왕에 올라 1468년까지 재위를 했던 조선의 제 7대 임금 세조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나도 리처드3세와 닮아 있습니다.
리처드3세는 1452년 10월 2일 태어나 1485년 8월 22일 사망을 하였으니 불과 몇 십년 차이가 나지 않는 같은 세기의 인물이였다고 봐야 할 테구요.
세조는 계유정난을 통해 단종의 측근이였던 김종서 등의 일파를 숙청하고 정권을 장악한 후 자신의 어린 조카였던 단종을 폐위시켰고 남은 측근들이 단종을 복위시키려 하였지만 실패로 돌아간 후 결국 단종은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가게 되어 17세의 어린 나이에 사망을 하게 됩니다. 조선왕조 실록에는 단종이 자살을 하였다고 기록이 되어 있지만 일각에서는 타살설 또는 사약을 받아 사사가 되었다는 설을 제기하고 있기도 합니다.
암튼 역사는 승자에 의해서 새로 쓰여지기 마련이니 리처드3세의 폭군이미지가 정말 사실인지는 알수가 없을 듯 하구요. 만약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 죽어서도 억울 할 테니 유골까지 발견된 상황이라면 역사학자들의 면밀한 연구를 통해서 그 사실이 정확히 밝혀 져서 사악한 폭군의 이미지를 벗었으면 하는 바램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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